칼 마르크스(Karl Marx)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철학자, 작가, 사회 이론가, 경제학자였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합니다.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와 함께 1848년에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출판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노동 가치 이론에 대해 논의한 자본론(Das Kapital)(첫 번째 책은 1867년 베를린에서 출판되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각각 사후 1885년과 1894년에 출판됨)을 저술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영향

많은 사람들이 칼 마르크스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지만, 자본주의를 사회적, 경제적 체제로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현대의 유효한 비평으로 남아있습니다. 자본론(Das Kapital)에서, 마르크스는 사회는 두 개의 주요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본가(capitalists)는 생산 공정을 조직하고 공장, 도구 및 원자재와 같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며 모든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기업 소유주입니다.

한편,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하나는 노동자 계급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고 불렀습니다). 노동자는 생산 수단, 작업 완제품 또는 해당 제품의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의 대가는 오로지 임금으로 제공될 뿐입니다. 마르크스스는 자본가들이 이러한 불균형적인 배치를 통하여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마르크스가 개발한 또 다른 중요한 이론은 역사적 유물론입니다. 이 이론은 어떤 시점의 사회는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술의 유형에 따라 정렬된다고 가정합니다. 산업자본주의(industrial capitalism) 하에서, 사회는 자본가들이 임금을 위해 일하는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노동을 조직화하도록 지시합니다. 자본주의(capitalism)에 앞서, 마르크스는 봉건주의(feudalism)에서 존재했던   지주와 농노 계급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가내수공업과 같은 당대의 생산 양식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르크스가 후세에 미친 영향

 마르크스의 업적은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과 요제프 스탈린(Josef Stalin)과 같은 미래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자본주의가 파멸의 씨앗을 담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의 근간을 이루며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거의 모든 것을 일반 노동자의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의 가치를 “도용”함으로써 이전되었다는 사상도 마르크스로부터 탄생했습니다..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당대의 가장 중요하고 혁명적인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1818년 5월 5일 프로이센의 트리에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루터교로 개종한 성공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본과 베를린에서 법을 공부했고 베를린에서 헤겔의 철학을 접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당시의 정치와 종교 기득권층을 비판했던 젊은 헤겔 학자들을 통해 급진주의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1841년 제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급진적인 신념으로 인해 교사직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기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쾰른(Cologne)에 있는 진보 성향 신문인 라이네쉬 자이퉁의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프로이센에서 거주한 뒤, 마르크스는 한동안 프랑스에서 살았고, 거기서 그는 평생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를 만났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추방되었고 그리고 나서 런던으로 이사하기 전에 그의 여생을 그의 아내와 함께 보냈습니다. 마르크스는 1883년 3월 14일 런던에서 기관지염과 늑막염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원래 무덤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1954년, 영국 공산당은 마르크스의 흉상과 유명한 문구가 적힌 묘비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문구인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를 영국식으로 해석한 “만국의  노동자”라는 글귀입니다.

유명 저서품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은 사회와 정치의 본질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요약하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의 목표를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공산당 선언문을 쓸 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왜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왜 결국 사회주의 사회로 대체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했습니다.

자본론(Das Kapital)(전체 제목: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골자로 합니다. 훨씬 더 학술적인 작업으로, 그것은 상품, 노동 시장, 분업 및 자본 소유자의 수익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제시합니다. 영어로 “capitalism(자본주의)”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합니다. 칼 마르크스가 영어로 “capitalism”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사용의 증가에 기여한 것은 확실합니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Capitalism이라는 영어 단어는 1854년 작가 윌리엄 새커레이(William Thackeray)에 의해 그의 소설 뉴콤스(The Newcomes)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그는 개인 소유물과 돈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새커레이나 마르크스가 서로의 작품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 모두 경멸적인 맥락으로 사용한 것은 확실합니다. 

현대에 미친 영향

순수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현대에 직접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898년 이후 경제학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의 Karl Marx and the Close of His System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후에야 극소수의 서양 사상가들이 마르크스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비난에 가까운 그의 저서에서, 뵘바베르크는 마르크스가 그의 분석에 자본 시장이나 주관적인 가치를 통합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고, 마르크스가 내린 결론의 대부분이 유효하지 않음을 입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경제 사상가들도 마르크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비록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혹독한 비평가였지만, 마르크스는 그것이 이전의 경제 체제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자본론에서 그는 “다양한 공정의 집합체를 하나의 사회 전체로 통합”한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해 설명했으며, 여기에는 신기술 개발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나라가 자본주의자가 되어 생산력을 키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반기를 들고 공산주의를 지향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처럼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경쟁과 기술 발전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경제 수익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상 하락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예측했습니다.

노동 가치론(The Labor Theory of Value)

다른 고전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칼 마르크스는 시장 가격의 상대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치의 노동 이론을 믿었습니다. 이 이론은 재화의 가치를 생산에 필요한 평균 노동 시간을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테이블이 의자보다 2배 더 오래 걸린다면 테이블이 2배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그의 전임자들(심지어 아담 스미스까지)과 동시대 사람들보다 노동 이론을 더 잘 이해했으며, 자본론에서 자유방임 경제학자들에게 치명적인 지적 도전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그는 재화 및 용역이 노동 시간으로 측정되는 진정한 객관적 노동 가치로 판매될 수 있었다면, 어떤 자본가들이 이익을 누리고 있겠냐는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자본가들이 저임금 또는 과로하여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생산 비용을 절감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르크스의 해답은 결국 틀렸고 이후 경제학자들은 주관적 가치 이론(subjective theory of value)을 채택했지만, 그의 단순한 주장은 노동 이론의 논리와 가정들의 약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마르크스는 의도치 않게 경제적 사고의 혁명을 부추기는 데 일조한 것입니다. 

경제에서 사회로의 전환.

UC-Berkley의 경제학 교수인 제임스 브래드포드 브래드 드롱 박사는 2011년에 마르크스의 경제 과학의 토대는 공산당 선언의 10개 단락에서 나왔다고 저술했습니다. 해당 단락은 어떻게 경제 성장이 사회 계층 간의 변화를 야기하고 종종 정치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즉, 경제적 원인이 행위자들의 감정과 정치적 활동의 근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대한 결론은 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그는 경제적 관점에서 소득 불평등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국민들 사이에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경제체제에 대한 도덕적, 인류학적 고려가 존재합니다. 하나의 질서에서 다른 질서로 이행하는 사회 구조의 변화가 생산 방식의 기술적 변화의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은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라고 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어 공산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사상가입니다. 대표적인 저서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 있습니다.